오늘은 세계의 이색 축제, 스코틀랜드 '업 헬리 아'에 대해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축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이랜드 문화나 전통 음악, 킬트 복장을 먼저 떠올리지만, ‘업 헬리 아(Up Helly Aa)’는 그런 이미지와는 결이 다른 축제입니다. 이 행사는 스코틀랜드 본토가 아닌 스코틀랜드에 속한 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로, 지리적·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해야만 그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셰틀랜드는 지도상으로는 스코틀랜드 행정 구역에 속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오랫동안 북유럽 세계와 더 가까웠던 지역입니다. 업 헬리 아는 바로 이 셰틀랜드의 역사적 경험과 지역 정체성이 응축된 축제로, ‘스코틀랜드 축제’라는 국가 단위의 설명만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축제를 이해하려면 왜 셰틀랜드라는 지역명이 반복해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지역성이 축제의 핵심이 되는 이유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셰틀랜드 제도와 바이킹 문화의 역사적 맥락
셰틀랜드 제도는 중세 이전부터 바이킹의 활동 무대였으며, 오랜 기간 노르웨이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셰틀랜드에는 지명, 언어의 흔적, 전통 관습 전반에 걸쳐 북유럽 문화가 깊게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셰틀랜드가 스코틀랜드 왕실에 편입된 것은 정치적·외교적 이유에 따른 비교적 늦은 결정이었고, 문화적 정체성까지 단번에 바뀐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뿌리를 북유럽 세계와 연결 지어 인식해 왔고,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지역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업 헬리 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바이킹 이미지는 외부에서 차용한 상징이 아니라, 셰틀랜드 주민들에게는 역사적 기억의 시각화에 가깝습니다. 축제의 중심 인물인 ‘구이저 자를(Guiser Jarl)’는 매년 서로 다른 바이킹 지도자나 역사적 인물을 콘셉트로 삼아 등장하며, 이는 단순한 분장이 아니라 지역이 기억하고 싶은 서사를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업 헬리 아는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축제가 아니라, 과거를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하는 문화적 작업이기도 합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업 헬리 아가 자리 잡은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당시 셰틀랜드에서는 긴 겨울밤 동안 젊은이들이 벌이던 무질서한 횃불 놀이와 방화성 행동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었고, 지역 사회는 이를 금지하기보다는 규칙과 질서를 갖춘 공식 행사로 흡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지역에 뿌리내린 노르드 문화가 축제의 서사로 선택되었고, 업 헬리 아는 공동체 질서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장치로 기능하게 됩니다.
불과 행진이 만들어내는 상징과 구조
업 헬리 아의 핵심 장면은 밤하늘을 가득 채우는 횃불 행렬과, 축제의 절정에서 불태워지는 바이킹 선박입니다. 이 장면은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기지만, 단순한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습니다. 북유럽 문화에서 불은 정화와 전환,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요소로 자주 등장합니다. 한겨울, 가장 어두운 시기에 열리는 이 축제에서 불은 계절의 전환과 공동체의 재생을 상징하는 도구로 작동합니다.
불태워지는 바이킹 선박은 실제 항해에 사용되는 배가 아니라, 축제를 위해 специально 제작된 구조물입니다. 이 선박은 수개월에 걸쳐 지역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며, 소각은 파괴가 아닌 의례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과거의 서사를 불 속에 보내며, 공동체는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흐름을 완성합니다. 이 과정은 철저히 계획되고 통제되며, 안전 관리 또한 축제 운영의 핵심 요소입니다.
업 헬리 아에는 엄격한 조직 체계와 규칙이 존재합니다. 참가자들은 정해진 복장을 갖추고, 정해진 순서와 동선을 따라 행진하며, 축제 전반은 지역 위원회에 의해 관리됩니다. 불이라는 위험 요소를 중심에 둔 행사이기 때문에, 개인의 즉흥성보다는 공동체의 합의와 규칙이 우선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칠고 원초적인 축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절제된 구조 위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식 행진과 소각 의식이 끝난 뒤에는 실내 행사로 무대가 옮겨집니다. 지역 회관에서는 음악과 춤, 공동 식사가 이어지며, 이는 외부에 보여지는 상징적 장면 이후 다시 공동체 내부로 돌아오는 역할을 합니다. 업 헬리 아는 외부 관람을 위한 장면과 내부 결속을 위한 시간이 분리되어 있는 축제이며, 이 이중 구조가 축제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로 유지시켜 왔습니다.
스코틀랜드 안에서도 셰틀랜드만의 축제로 남은 이유
업 헬리 아는 종종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불 축제로 소개되지만, 실제로는 셰틀랜드라는 특정 지역의 역사와 환경, 사회 구조가 결합되어 형성된 행사입니다. 스코틀랜드 본토의 다른 지역에서는 바이킹 문화가 동일한 방식으로 지역 정체성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업 헬리 아와 같은 축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셰틀랜드에서는 바이킹 서사가 외부 침략의 기억이 아니라, 지역 형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축제의 중심 서사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업 헬리 아는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축제가 아닙니다. 외부 방문객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운영과 중심은 여전히 지역 주민에게 있습니다. 많은 행사와 파티는 지역 내부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외부 관람객은 그 일부만을 접하게 됩니다. 이는 축제가 외부 시선에 맞춰 과도하게 변형되지 않고, 공동체 내부의 합의를 우선해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환경적 조건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셰틀랜드의 겨울은 길고 어둡고, 날씨 또한 거칠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불을 중심으로 한 축제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게 작용합니다. 동시에 불을 다루는 데 필요한 안전 관리 경험과 사회적 수용성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업 헬리 아는 지금의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 환경, 공동체 조직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에 이 축제는 스코틀랜드라는 국가 안에서도 셰틀랜드만의 독자적인 행사로 남아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업 헬리 아는 단순한 바이킹 퍼레이드나 불 축제가 아니라, 셰틀랜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기억하고 공동체를 유지해 온 방식을 집약한 문화적 의식입니다. 스코틀랜드라는 국가적 틀 안에 존재하지만, 지역의 역사와 환경, 사회적 합의가 축제를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업 헬리 아는 장소와 분리될 수 없는 축제이며, 셰틀랜드라는 이름이 함께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